한여름 댐 낚시 좌대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켜자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주변을 날던 몸집 큰 잠자리들이 선풍기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잠자리들은 선풍기 주위를 천천히 맴돌다가 살포시 내려앉지 않았다. 보호망을 덮치듯 거칠게 돌진한 뒤 매달렸고, 햇빛을 반사하는 낚싯대에도 공격하듯 부딪혔다. 같은 모습의 다른 잠자리가 접근하면 곧바로 날아가 상대를 쫓아낸 뒤 다시 선풍기 주변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선풍기를 끄자 이러한 행동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보호망이 단순히 앉기 좋은 장소였다면 전원이 꺼진 뒤에도 찾아와야 하지만, 잠자리들은 선풍기가 돌아갈 때만 나타났다.
접근하는 종류도 일정했다. 고추잠자리처럼 몸집이 작은 잠자리들은 가까이 오지 않았고, 사진 속 개체와 비슷한 대형 잠자리들만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사진 속 개체는 몸집과 무늬로 볼 때 장수잠자리 종류인 듯하다.
이 같은 행동은 가동 중인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빠른 회전과 반사광, 반복되는 명암 변화를 잠자리가 같은 대형 수컷이나 영역 침입자의 움직임으로 오인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잠자리는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포식성 곤충이다. 같은 종류의 경쟁 개체가 자신의 활동 공간에 들어오면 빠르게 추격해 몰아내는 행동을 보인다. 먼저 접근한 개체가 뒤이어 나타난 잠자리를 쫓아낸 모습도 수컷 간 경쟁과 영역 방어에 가깝다.
낚싯대에 과하게 부딪힌 행동도 비슷한 시각적 착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광 낚싯대에 햇빛이 반사되고, 바람이나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반사점이 빠르게 이동하면 잠자리에게는 다른 잠자리나 작은 곤충의 움직임처럼 보였을 수 있다.
다만 선풍기의 회전 날개가 혹시 암컷의 날갯짓처럼 보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수컷이 암컷으로 여겨 빠르게 접근했고, 같은 자극을 보고 다른 수컷까지 몰려오자 연적으로 판단해 쫓아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관찰을 종합하면 선풍기 가동, 대형 잠자리 접근, 보호망을 향한 돌진, 다른 개체 추격, 선풍기 정지 후 접근 중단이라는 흐름이 반복됐다. 이를 볼 때 선풍기의 회전과 반사광이 우선 경쟁 수컷의 활동 신호처럼 작용했고, 경우에 따라 암컷의 날갯짓으로 오인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풍기의 회전 모습과 반사광, 소리, 바람 가운데 어떤 요소가 가장 강한 자극이었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선풍기 날개를 가린 상태, 소리만 들려주는 상태, 반사광을 줄인 상태에서 접근 횟수를 비교한다면 흥미로운 과학적 탐구로 이어질 수 있다.
더위를 식히려고 켠 선풍기 한 대가 뜻밖에도 대형 잠자리들의 경쟁 무대가 된 셈이다. 사람에게는 단순한 회전 날개였지만, 잠자리에게는 당장 몰아내야 할 침입자나 경쟁자의 거대한 날갯짓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혹시 선풍기의 회전을 암컷의 날갯짓으로 착각한 것이라면, 한여름 물가에서는 조금 우스운 구애와 연적 간의 쟁탈전이 벌어진 셈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 둔 사람 앞에서 제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가, 엉뚱한 신호에 뒤늦게 달려든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경쟁자로 오해해 애꿎은 마음만 다친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 서툴렀다고 너무 자책할 일은 아니다. 제대로 대시하지 못한 사람도, 용기를 냈다가 허공에 부딪힌 사람도 적어도 누군가를 향해 날아오를 마음은 품고 있었다. 잘못된 반짝임을 진짜 인연으로 착각한 날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비행은 아니다.
선풍기는 멈추면 그만이지만 인연의 날갯짓은 어느 날 다시 찾아온다. 그때는 경쟁자부터 쫓아내려 하지 말고, 먼저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살펴보자. 사랑도 낚시와 같아서 헛챔질 몇 번 했다고 물속에 붕어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