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3일 동대문구청에서 열린 주민·동대문구·국토부·사업자 간 열린 ‘GTX 청량리 변전소 원안 반대 관련 회의가 열렸다. 이제 GTX 청량리 변전소 설치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지역 민원을 넘어 행정 판단의 투명성, 안전성 검증 체계, 정책 우선순위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숲에서 청량리로의 부지 변경 경위, 43m와 18.2m로 엇갈린 이격거리 기준, 대체부지 검토의 실질성, 급전 방식 변경 가능성까지 논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구의원과 구청까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안은 정책적 책임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① “43m와 18.2m”… 단순 수치인가, 평가 전제의 차이인가
갈등의 불씨는 ‘이격거리’였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는 아파트와 변전소 간 거리가 43m로 설명됐지만, 지하안전영향평가에서는 18.2~18.29m를 기준으로 검토가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다. 지하안전평가 담당자는 회의에서 18.29m 기준 적용을 인정했다.
문제는 이 차이가 단순 계산상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하 30m 이상 굴착 공사의 경우, 굴착 심도·지반 조건·지하수 흐름에 따라 영향 범위가 달라진다. 국토부 지하안전평가 표준매뉴얼은 굴착 깊이의 최대 3배 범위를 영향권으로 검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34m 굴착이라면 100m 이상이 영향 범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주민들이 “100m와 18m는 위험도가 다르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이격거리가 좁을수록 지반 침하, 건물 균열, 지하수 변화에 따른 장기적 안정성 문제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동일 사업에서 두 평가가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평가 전제가 다르면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② 서울숲은 왜 배제됐나… 부지 변경의 정책적 판단은 무엇이었나
부지 선정 과정 역시 핵심 쟁점이다.
비교 검토 자료에 따르면 서울숲안은 시공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상형 구조로 건설이 가능해 유지관리도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도시계획 변경 필요성과 GTX-B 노선 연계 불가가 단점으로 제시됐다.
청량리안은 철도부지 활용이 가능하고 GTX-B 연계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아파트 근접(집단민원 우려), 지하형 구조, 별도 수직구 필요, 시공성·경제성 불리 등의 요소가 명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 선택은 청량리안이었다.
주민들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 경제성이 우수하다고 평가된 안을 왜 배제했는가
- 민원 우려가 공식 문서에 기재된 안을 왜 채택했는가
- GTX-B 연계가 결정적 요소였는가
사업자 측은 “기본계획 단계에서 현 위치를 포함해 제안했고, 우선협상자 지정 이후 협상 과정을 거쳐 실시계획이 고시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초기 선택 단계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졌다면, 그 판단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부지 변경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책임 소재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③ 대체부지 검토… 실질적 대안인가, 행정적 형식인가
회의에서는 대체부지 검토가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주민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실시계획이 고시되고 설계가 반영된 상황에서 대체부지 검토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설계 변경은 사업 일정 지연과 비용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참석자들은 “대체부지를 먼저 적극 제시한 쪽은 구청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행정 내부에서도 현 위치에 대한 부담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위원장은 “현 위치에서 다른 부지로 옮기는 원칙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단순한 가능성 언급이 아니라 정책적 결단을 요구한 것이다.
④ 정성영·김용호 구의원 “재검토·재수렴 필요”
정성영 구의원은 설명회 참석 인원이 10여 명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지적하며, 형식적 절차 이행에 그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주민 수용성 확보는 단순 공고와 개최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 참여와 설명의 충분성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김용호 구의원은 대체부지 전면 재검토와 급전 방식 변경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비용을 이유로 안전을 후순위에 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추가 비용 발생 시 부담 주체 역시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구의원의 발언은 갈등이 지역 정치 의제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⑤ 급전 방식 변경 논란… 기술 문제인가, 재정 책임 문제인가
회의에서는 의정부(약 12km), 양주(약 18km) 변전소와 연계하는 급전 방식이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KTX 사례에서는 50km 이상도 가능하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러나 설계 변경은 추가 비용과 일정 지연을 동반한다. 결국 논의는 “가능하냐”를 넘어 “누가 부담하느냐”로 이동했다.
주민들은 비용 증가가 주민이나 지자체에 전가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사업자와 행정기관은 구체적 부담 구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⑥ 구청의 허가권… 3자 협의체가 분수령
동대문구청은 수직구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으며, 허가 없이는 공사 진행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행정적으로 일정 부분 조정 권한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GTX-B 노선의 경우 2주마다 3자 TF 회의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청량리 사안 역시 주민·구청·사업자 간 공식 협의체 구성이 현실적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3자 협의체가 구성된다면 이격거리 기준 재검증 / 대체부지 실효성 평가 / 급전 방식 변경 타당성 분석 / 비용 부담 구조 공개 등이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갈등의 본질은 ‘신뢰’와 ‘우선순위’
이번 사안은 단순한 입지 분쟁이 아니다.
- 안전과 경제성 중 무엇이 우선이었는가
- 행정 판단은 투명했는가
- 대체부지 검토는 실질적이었는가
- 동일 사업에서 왜 다른 기준이 적용됐는가
주민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과 납득 가능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업자는 실시계획 고시 완료를 근거로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권은 재검토를 요구하고, 구청은 협의 구조 필요성을 언급한다.
결국 ‘43m와 18.2m’라는 숫자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서울숲 배제 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공개하느냐가 갈등 해소의 관건이다.
3자 협의체를 통한 재검증과 정책적 재판단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행정·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GTX 청량리 변전소 논란은 지금, 공공 인프라 결정 과정에서 안전과 경제성, 행정 편의와 주민 신뢰 중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