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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 계절

2026-10-04 08:43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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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다.

영어로는 October, 옥토버라 부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October의 뿌리가 된 라틴어 ‘octo’는 ‘8’을 뜻한다. 문어를 뜻하는 octopus나 팔각형을 뜻하는 octagon에도 같은 ‘8’의 흔적이 남아 있다.

왜 10월에 ‘8’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고대 로마의 오래된 달력에서는 3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3월부터 세면 9월은 일곱 번째, 10월은 여덟 번째, 11월은 아홉 번째, 12월은 열 번째가 된다. 그래서 September는 ‘7’을 뜻하는 septem, October는 ‘8’의 octo, November는 ‘9’의 novem, December는 ‘10’의 decem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훗날 1월과 2월이 한 해의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이 달들은 지금의 9월·10월·11월·12월이 됐지만 오래된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자리는 바뀌었어도 이름에는 옛 시간이 남은 셈이다.

사람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 자리도 바뀌고 모습도 달라지지만 살아온 흔적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의 풍경도 어느새 달라졌다.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은 가벼워졌다. 들판에서는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길가에는 황화코스모스가 노랗게 흔들린다. 국화도 꽃망울을 열고 산자락의 나뭇잎은 하나둘 제 빛깔을 찾아간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했던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돌지만 한낮의 볕은 아직 따뜻하다. 하루에도 옷깃을 여몄다 풀었다 하게 되는 때다.

가을 산길에서는 발밑도 살펴야 한다. 날이 완전히 추워지기 전에는 뱀을 마주칠 수도 있어 풀숲이나 낙엽 쌓인 곳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길도 그렇다. 하늘만 바라보며 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발밑만 내려다보며 살 수도 없다. 멀리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도 있다.

가을걷이가 시작된 들판을 바라보면 사람의 삶도 농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 무엇을 심었는지, 여름에 얼마나 땀 흘렸는지, 가을이 되면 들판이 말해준다.

사람의 한 해도 그렇지 않을까. 무엇을 얻었는지만 헤아릴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잃었는지, 누구에게 고마웠는지, 혹여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돌아볼 때다.

잘한 일은 조용히 거두고, 잘못한 일은 변명하지 말고 인정하자.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손을 내밀어 보는 것. 그것도 인생의 가을걷이일 것이다.

단풍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한여름 내내 같은 초록빛이던 나무들이 가을이면 붉고 노랗게 저마다 다른 빛깔을 낸다. 누구를 닮으려 하지 않고 제 빛깔을 다한 뒤 미련 없이 잎을 내려놓는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남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내 빛깔을 잃지 않는 것. 더 움켜쥐는 것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는 것. 가을은 그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이제 조금 있으면 첫서리가 내릴 것이다. 들판의 빛도 달라지고 나무는 잎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서리가 끝은 아니다. 땅속에서는 보이지 않게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우리 인생에도 서리 같은 날이 있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아무리 애써도 넘지 못했던 고비.

그러나 한 계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꽃이 졌다고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잎을 떨군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쳤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잘못 걸어왔다면 방향을 고치면 된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에도 길은 남아 있다.

어쩌면 용기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인지도 모른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은 쓸쓸해 보이지만 빈 것이 아니다. 한 해를 견뎌낸 땅이 잠시 쉬며 다시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고, 멈춰야 다시 걸을 힘을 얻을 때가 있다.

10월. 지나온 길을 한번 돌아보자. 잘못한 것은 바로잡고, 미안한 것은 사과하고, 고마운 것은 오래 기억하자.

그리고 다시 걸어가자.

October라는 이름 속에 오래전 여덟 번째 달의 흔적이 남아 있듯, 사람에게도 살아온 시간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길 흔적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서리가 내려도 괜찮다. 낙엽이 져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아직
걸어갈 계절이 남아 있으니까.

사진 속 철거 현장 인근 홈플러스 자리에는 지상 49층 규모의 용두역세권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며 공공기여를 통해 500석 규모의 공연장도 조성될 예정이다 사진동대문이슈
▲사진 속 철거 현장 인근 홈플러스 자리에는 지상 49층 규모의 용두역세권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며, 공공기여를 통해 500석 규모의 공연장도 조성될 예정이다. 사진=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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