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약령시협회장 성관호>
매년 가을 서울약령시를 가득 채우는 약재의 향기는 단순한 축제의 풍경이 아니다. 조선시대 가난하고 병든 백성을 돌보던 구휼기관인 보제원(普濟院)의 생명존중 정신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올해로 32회를 맞는 '서울약령시 보제원 한방문화축제'는 특정 지역의 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통의학과 한방문화를 대표하는 국가적 문화자산이다.
그럼에도 예산 심의 때마다 "특정 상권 행사"라는 지적과 함께 서울시의 '기초자치단체 동일사업 5년 내 3회 지원 제한' 규정이 반복적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보제원 축제가 지닌 역사성과 공익성, 그리고 상위법의 취지를 외면한 기계적인 규정 적용에 불과하다.
보제원 축제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은 시혜가 아니다. 행정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법적 책무이며, 규정을 넘어서는 정책적 결단이어야 한다.
첫째, 상위법인 「한의약육성법」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재정 지원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한의약육성법」 제3조는 지방자치단체가 한의약 육성을 위한 시책과 행정적·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한의약 육성을 위한 조례」 또한 서울시장의 책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5년 내 3회 지원 제한'은 일반적인 축제 지원의 형평성을 위한 내부 행정지침일 뿐이다. 법률이 보호하는 국가 전통문화와 한의약 육성사업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상위법보다 내부 규정을 앞세우는 주객전도다.
둘째, 일몰제의 기계적 적용은 역사문화 자산의 공공재 가치를 훼손한다.
일반 축제는 자생력을 요구할 수 있지만, 전통문화와 공익적 복지사업은 시장 논리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보제원 축제는 무료 한방진료와 건강상담 등을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지역사회 연대를 강화하는 공익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공공성이 분명한 축제를 일반 상업행사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화 보존과 복지라는 국가의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셋째, 보제원 축제 지원은 전국 약용농가와 한의약 산업을 살리는 국가적 투자다.
서울약령시는 국내 최대 한약재 유통시장이다.
이곳의 활성화는 동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약용작물 재배농가와 한의약 산업,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국가적 투자다.
이를 단순히 특정 자치구에 대한 중복 지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거시적 정책효과를 외면한 협소한 행정 시각이다.
넷째, 규정의 장벽을 넘는 것은 결국 행정 수장의 의지다.
서울시장은 보제원 축제 지원이 단순한 예산 배분이 아니라 법령이 부여한 책무임을 직시해야 한다.
예외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동대문구청장 역시 서울시 지원만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서울약령시를 세계적인 한방문화 관광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실행계획과 관광 인프라 구축, 민관 협력체계 마련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서울시를 설득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과 실행력이 함께할 때 비로소 규정의 장벽도 넘어설 수 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것은 지역의 성장동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행정은 규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추구하는 공익과 국민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5년 내 3회 제한'이라는 규정은 행정의 효율성을 위한 장치일 뿐, 국가적 문화자산을 가로막는 쇠창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위법의 취지와 공익적 가치를 우선하는 서울시장의 결단, 그리고 이를 현실로 만드는 동대문구청장의 실행력이 함께할 때 보제원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보제원의 횃불을 지키는 일은 단지 하나의 축제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한의약 문화의 미래와 지역 공동체의 내일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이 오늘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함께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