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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쪽으로

2026-06-05 15:25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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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그리고 철새들의 계절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선비 왕촉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장의 회유를 받았다.

높은 벼슬도 주고, 부귀영화도 보장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왕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이라 불렀다.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정권도 바뀌고 정책도 달라질 수 있으며 사람의 생각 또한 변할 수 있다.

문제는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방향의 변화다.

봄바람이 불면 남쪽으로 날아가고, 가을바람이 불면 북쪽으로 날아가는 철새야 자연의 이치라지만, 사람의 신념까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바뀐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선거철이 되면 유난히 분주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는 이 깃발 아래 있더니 오늘은 저 깃발 아래 서 있고, 지난해까지 맹렬히 비판하던 사람을 오늘은 누구보다 열심히 칭찬한다.

때로는 자신의 과거마저 잊어버린 듯하다.

그들의 혀는 놀라울 만큼 유연하고, 허리는 갈대보다 부드럽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권력이 바뀌면 말도 갈아입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오래된 정치 격언 하나가 있다.

인사가 만사(人事萬事).

사람을 잘 쓰는 것이 곧 정치의 절반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사람을 잘못 쓰면 무너지고, 아무리 큰 업적도 한 번의 불공정한 인사로 빛을 잃는다.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결과가 나오자 어느새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묵묵히 땀 흘린 사람도 있지만, 일이 마무리될 무렵 비로소 나타나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누가 열매 곁에 서 있는지만 보게 되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 지도자는 박수 소리보다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한다.

누가 마지막에 다가왔는가보다 누가 처음부터 함께 걸어왔는지, 누가 크게 말하는가보다 누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람을 쓰는 일은 결국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공정함은 거창한 원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수고를 잊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권이 바뀌고 지방권력이 바뀌는 시기마다 가장 바쁜 사람은 주민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은 늘 방향이 바뀐다.

오늘의 순풍은 내일의 역풍이 되고, 오늘의 권력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기억되고,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보다 누구를 위해 일했는가가 평가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권력의 문 앞에서 허리를 굽힌 사람보다 원칙 앞에서 고개를 세운 사람이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갈대는 많지만, 방향을 잃지 않는 나무는 드물다.

훗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권력의 곁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어려운 순간에도 처음의 자리를 지켰느냐일 것이다.

세상은 결국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과 가장 따뜻한 박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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