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올려다보는 탑이 있다.
에펠탑.
오늘날 파리의 낭만을 상징하지만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거대한 철탑이 모습을 드러내자 예술가와 문인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흉물’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에펠탑이라는 이름은 건설을 이끈 기술자이자 사업가 귀스타브 에펠에게서 왔다. 하지만 기본 구상은 그의 회사 기술자 모리스 쾨클랭과 에밀 누기에가 제안했고, 건축가 스테판 소베스트르가 외관을 다듬었다.
공사는 1887년 1월 26일 시작해 1889년 3월 31일 끝났다. 2년 2개월 5일 동안 1만8천여 개의 금속 부품을 맞추고 약 250만 개의 리벳을 박았다.
지금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보이지만 공사 중에는 쇳소리와 불꽃,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긴장이 있었다.
완성된 탑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의 반듯한 오늘만 바라보면 그 사람이 몇 번 넘어졌는지, 얼마나 오래 견뎠는지 알 수 없다. 웃고 있는 얼굴 뒤에 지나온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는 사람에게도 남모르는 애환이 있을 것이다.
에펠탑은 완공됐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처음 약 300m였던 탑은 안테나 등이 더해져 현재 330m가 됐다.
사람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완성형이 아닐지 모른다. 나이를 먹어도 배우고, 상처받고, 고치고, 다시 세우며 조금씩 달라진다.
에펠탑 역시 처음부터 영원히 남기로 예정된 탑은 아니었다. 에펠에게 주어진 운영권은 20년이었고 이후에는 철거될 가능성이 있었다.
에펠은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 탑을 과학 연구와 무선전신 실험 등에 활용하도록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찾았다. 높은 탑의 통신 가치가 커지면서 에펠탑은 철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은 것이다.
 |
| ▲1900년 무렵의 에펠탑. 건설 당시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철거 위기를 넘어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사진=Wikimedia Commons·State Library of Victoria / Public Domain |
에펠탑을 몹시 싫어했던 소설가 모파상이 오히려 탑 안에서 식사를 즐겼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세부까지 확인된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역설적이다. 그토록 보기 싫다던 탑을 이제는 보기 위해 세계 사람들이 파리로 찾아간다.
1940년 독일군의 파리 점령 때를 두고도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당시 에펠탑의 승강기가 운행되지 않았고 파리를 방문한 히틀러도 정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훗날 이런 말이 전해졌다.
“히틀러는 파리를 정복했지만 에펠탑은 정복하지 못했다.”
사실과 후대의 상징적 표현이 섞인 이야기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한 시대를 뒤흔들던 권력도 사라졌다. 에펠도 떠났고, 탑을 흉물이라 비난했던 사람들도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탑은 남았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평가를 받는다. 박수를 받을 때도 있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있다. 알아주지 않아 서럽고, 오해받아 억울한 날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평가가 인생의 마지막 평가는 아니다.
에펠탑을 흉물에서 파리의 상징으로 바꾼 것도 변명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은 노력과 그것을 지켜본 시간이었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실패했던 날, 외로웠던 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았던 날.
당시에는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까지도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높은 탑도 작은 철골 하나에서 시작했다.
그러니 조금 늦었다고 낙심할 것도, 한 번 무너졌다고 끝났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 모두 아직 공사 중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파리에 밤이 내리면 에펠탑은 불을 밝힌다.
자신을 흉물이라 부르던 사람들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빛난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좋겠다.
세상의 박수와 야유에 너무 흔들리지 않고, 나를 몰라준 사람보다 나를 믿어준 사람을 기억하면서.
넘어진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다시 일어났음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날,
비록 조금은 쓸쓸하더라도
아쉬움 몇 자락 남아 있더라도,
"잘 견뎌냈다고.
몇 번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났다고."
"그래도 참, 잘 살아왔다고."
[동대문이슈]
빠르고 바른 우리 동네 뉴스 플랫폼!
ddmiss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