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혼자 걷지 않는다.
왕의 곁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권력자의 귀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말이 먼저 닿았다. 그 말이 충언이면 나라를 살리기도 했지만, 달콤한 아첨이면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렸다.
그래서 역사를 읽다 보면 왕보다 그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더 섬뜩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중국 진나라의 조고(趙高)가 그랬다.
진시황 사후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선 조고에게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전해진다.
指鹿爲馬 지록위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사슴인 줄 알면서도 권세가 두려워 말이라고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권력자는 어느 순간 세상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측근이 보여주는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나 조고의 권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진나라가 무너져가는 가운데 자신이 황제로 세웠던 자영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와 손잡았던 재상 이사(李斯)의 최후도 씁쓸했다.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지만 진시황 사후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조고와 손잡았고, 결국 그 조고에게 밀려 처형됐다.
권력을 지키려고 원칙을 굽혔지만, 그 권력은 마지막 순간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다.
조선 연산군 시대에는 임사홍(任士洪)이 있었다. 왕의 뜻을 좇으며 권세를 키우고 갑자사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지만,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쫓겨나자 그의 권세도 함께 끝났다.
명종 때 윤원형(尹元衡)도 문정왕후를 배경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그 권세를 받쳐주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화려했던 자리도 빠르게 무너졌다.
명나라의 엄숭(嚴嵩) 역시 황제의 두터운 신임 아래 오랫동안 권세를 누렸지만, 신임이 거두어지자 관직과 재산을 잃고 몰락했다.
조고와 이사, 임사홍과 윤원형, 엄숭.
시대도 다르고 잘못의 크기도 다르다. 그들을 한 줄에 놓고 똑같은 사람이라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역사가 보여주는 오래된 풍경 하나는 닮았다.
권력 가까이에 오래 머물다 보면 빌린 힘과 자신의 힘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 내 뒤에 있는 권력에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도 어느 순간 흐릿해진다. 그리고 권력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권력 가까이에 있을수록 필요한 것은 자랑보다 염치(廉恥)인지도 모른다.
받은 자리가 자신의 능력보다 크지는 않은지,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 정말 동의해서인지 아니면 권세가 두려워서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스스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지록위마의 진짜 두려움도 여기에 있다.
사슴을 말이라 우긴 조고만으로 지록위마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사슴인 줄 알면서도 말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있었고, 마침내 그런 말만 듣게 된 권력자가 있었다.
아첨은 권력자의 귀에는 달지만, 역사는 대개 그 뒷맛까지 기록했다.
권세는 오래 머무는 것 같아도 결국 지나간다. 봄날 한때 흐드러졌던 꽃도 계절이 바뀌면 가지를 비운다.
權勢如春夢 권세여춘몽
“권세는 봄날의 꿈과 같다.”
꿈속에서 얼마나 높은 곳에 있었느냐보다, 꿈에서 깨어난 뒤 무엇이 남아 있는가.
권력의 옆자리에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쩌면 권력을 잃는 일이 아니라, 권력이 사라진 뒤 돌아보니 염치마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동대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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