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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입추 지나 달라진 물과 바람

2026-08-08 16:14 | 입력 :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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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추 지나고 14일 말복·23일 처서로…파로호에서 먼저 느낀 계절의 미세한 변화
* “세월과 풍광은 함께 흘러간다”…두보의 시구로 돌아본 가는 여름


사흘 전 저녁 해거름, 파로호 물에 몸을 씻었다. 표층 수온은 32도, 4m 아래 수심도 29도였다. 체온과 불과 몇 도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근다기보다 미지근한 온수로 샤워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이틀 사이 물과 바람이 조금 달라졌다. 엊그제 저녁에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바람 때문인지 물 밖으로 나온 뒤 시원함을 넘어 제법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은 낮에도 바람이 분다. 여전히 한낮은 열탕지옥이다. 햇볕은 사납고 물도 아직 뜨겁다. 그런데 바람만은 아주 조금 달라졌다. 가을이 왔다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뜨거운 여름 한복판 어디쯤에서 계절이 몰래 방향을 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월과 시절의 변화는 참 묘하다.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던 폭염도 입추(立秋)를 지나고, 오는 14일 말복(末伏), 23일 처서(處暑)를 향해 가고 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옛말처럼 지금은 쪄 죽을 듯한 날씨도 머지않아 아침저녁의 공기부터 달라질 것이다.

낚시 선배들이 “말복이 지나면 물속부터 달라진다”며 물놀이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예전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쯤으로 들었는데, 며칠 물가에서 지내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은 달력을 보고 계절을 알지만 물고기와 풀벌레, 벼와 바람은 몸으로 먼저 계절을 알아채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농부들이 음력과 24절기를 농사의 이정표로 삼았던 이유도 새삼 이해된다. 과학적인 기상관측 장비가 없던 시절에도 하늘빛과 바람, 물과 풀의 변화를 살피며 씨를 뿌리고 거두었다. 24절기는 단순히 옛 달력에 적힌 날짜가 아니라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축적한 삶의 지혜였을 것이다.

불과 사흘이다. 물이 달라지고 바람이 달라졌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에 나오는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유전)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사람이 칠십을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었다. 풍광이여, 세월과 함께 흘러가더라도 잠시나마 서로 즐기며 헤어지지 말자.”

천 년도 훨씬 전의 ‘칠십’과 오늘의 칠십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인생이 유한하다는 뜻만큼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봄을 붙잡을 수도, 여름을 붙잡을 수도 없다. 계절이 그러하듯 사람의 세월도 그렇다. 두보는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풍광을 잠시라도 함께 즐기자고 노래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우리 속담도 결국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아무리 기세등등한 삼복더위도 입추를 넘고 말복과 처서를 지나면 한발 물러선다. 그렇게 푸르던 나뭇잎도 때가 되면 물들고 떨어진다. 사람이라고 세월의 이치를 비켜갈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계절 하나가 넘어가는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젊어서는 “또 가을이 오는구나” 했는데, 이제는 “올해 여름도 이렇게 가는구나” 하게 된다. 그 짧은 말 속에는 앞으로 내가 맞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 하는 애잔함도 숨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가는 세월만 야속해할 일도 아니다. 세월을 붙잡을 수 없다면 풍류라도 놓치지 말 일이다. 물이 따뜻하면 따뜻한 대로 몸을 담그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낚싯대를 잠시 내려놓고 그 바람을 맞으면 된다. 말복 지나 물빛이 달라지면 그것을 바라보고, 처서 지나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면 그 소리를 들으면 된다.

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

세월과 풍광은 함께 흘러간다. 그러니 아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때 바라보고, 느끼고, 즐길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한 번쯤 되새겨볼 일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덜 욕심내고,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고마워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나고 나면 더위도 추억이 되고, 다툼도 하찮아진다. 결국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함께한 사람에게 어떤 마음으로 기억되느냐일 것이다.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

그러니 세월과 싸우기보다, 흘러가는 계절을 받아들이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가는 세월 앞에서 배워야 할 가장 오래된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빌려온 사진혼자먹었다 오해있을까봐서
▲ 빌려온 사진(혼자먹었다 오해있을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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