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호랑이는 사냥을 통해 강해진다.
하지만 집안에 갇힌 호랑이는 점점 자신의 울음소리에만 익숙해진다. 밖에서는 늑대와 사자가 뛰고 있는데, 안에서는 누가 더 큰 호랑이인지 다투느라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가끔 우리 축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이름난 선수들이 감독이 되었고, 유명한 인물들이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름값이 반드시 좋은 축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문전까지는 잘 가는데 마지막 한 걸음이 부족했고, 기회는 많았지만 골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답답함은 어쩌면 선수 개인의 능력보다 축구를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낯선 바람이 불었다. 익숙한 질서와 관행을 흔들고, 이름보다 경쟁을 앞세우고, 계보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변화였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국 축구는 세계를 두려워하기보다 세계와 겨루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등장했고, 한국 축구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축구는 결국 11명이 함께 하는 경기다.
세계적인 스타 한두 명이 있다고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패스는 끊기고, 움직임은 엇박자가 나며,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 늦어진다. 반대로 강팀은 화려한 개인기보다 먼저 조직력을 보여준다. 공을 주는 선수는 받을 선수를 믿고, 받는 선수는 동료가 어디로 움직일지 믿는다. 축구는 발로 하는 경기이지만, 결국 신뢰로 완성되는 스포츠다.
일본 축구를 보면 그런 점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세계 최고의 스타들만 모인 팀은 아니지만 선수들은 하나의 철학 아래 움직인다.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보다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를 선택한다. 그래서 한 명의 영웅보다 하나의 팀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를 지켜보며 문득 걱정이 밀려왔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움직임과 기술, 경기 운영을 보다 보면 축구가 얼마나 정교한 스포츠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 경기를 보면 패스는 자주 끊기고, 공격과 수비의 간격은 벌어지며, 선수들 사이의 호흡도 매끄럽지 못해 보인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경기 운영이었다.
중국 고사에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비겨도 충분한 상황이라면 먼저 지지 않는 축구를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다. 공격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지켜야 할 순간도 있다.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경기에서조차 공격만 생각했다면, 그것은 용기보다 조급함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좋은 장수는 언제 싸워야 하는지뿐 아니라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도 안다. 좋은 선장은 순풍만 바라지 않고 역풍까지 계산한다.
그런데 이날은 마치 비겨도 되는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처럼 치른 느낌이었다. 결과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축구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의 스포츠이기도 하다. 때로는 화려한 공격보다 냉정한 판단이 더 큰 승리를 가져오기도 한다.
오늘 남아공전 패배를 보며 결과보다 과정이 더 아쉬웠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밀려난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언론도 패스 연결과 조직력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축구는 선수들의 신뢰와 감독의 지략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제발 오늘의 패배가 단순한 한 경기의 결과로 끝나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이것이 정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기를 바란다.
집안 호랑이는 집 안에서 가장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월드컵은 들판에서 싸우는 무대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이름값도, 기세도 아니다. 서로를 믿는 팀워크와 상황을 읽는 지혜다. 축구공이 둥근 이유는 어느 한쪽으로만 굴러가지 말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인생도 축구도, 그리고 리더의 지략도 너무 모가 나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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