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말했다.
«공성신퇴(功成身退), 천지도야(天之道也).
일을 이루고 물러나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중국 춘추시대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짧게 답했다.
«교토사주구팽(狡兔死 走狗烹).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도 삶아 먹히고, 적국이 망하면 공신도 버림받는다.»
범려는 떠날 때를 알았기에 살아남았다. 반면 함께 공을 세웠던 문종은 자리에 남았고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옛이야기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상에는 남아야 할 사람이 있고, 떠날 사람이 있으며, 떠나야 할 사람이 있다. 문제는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나지 않을 때 시작된다.
권력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리가 책임의 자리가 아니라 지켜야 할 재산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변화는 없고 성과도 없는데 직함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자리 보전일 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주변이다. 충언보다 아첨이 많아지고, 원칙보다 이해관계가 앞설 때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듣기 좋은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공동체를 위한 쓴소리는 사라진다.
그래서 남아야 할 사람은 분명하다. 주민을 섬기는 사람, 주민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 잘못을 보면 침묵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자리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조직을 지키고 지역을 지킨다.
반대로 떠나야 할 사람도 있다. 책임보다 변명이 많고, 공동체의 미래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사람을 남기자는 말이 책임까지 남겨두자는 뜻은 아니다. 공동체는 사람은 품어야 하지만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을 키우고 남긴다는 것은 자리를 영원히 보장한다는 뜻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올바르게 구분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순간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짐이 된다.
여기에 더해 경계해야 할 모습이 하나 있다.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는 허물을 벗고 날아가지만 허물은 그대로 남는다.»
자신이 남긴 문제와 갈등, 실패의 흔적은 그대로 둔 채 슬그머니 다른 자리로 옮겨 또 다른 기회를 찾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사람은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책임까지 떠날 수는 없다. 직함은 바꿀 수 있어도 남겨진 결과는 바꿀 수 없다. 공동체는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가 아니라 그가 남긴 흔적으로 평가한다.
결국 조직은 사람으로 흥하고 사람으로 쇠한다. 남아야 할 사람이 남고,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날 때 조직은 건강해진다. 반대로 떠나야 할 사람이 남고, 남아야 할 사람이 떠날 때 조직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옛사람들은 또 말했다.
«전거복철(前車覆轍).
앞 수레가 뒤집힌 자리는 뒤 수레의 교훈이 된다.»
실패를 잊는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조직은 같은 사람에게 또다시 미래를 맡기게 된다. 앞 수레가 넘어졌는데도 원인을 살피지 않는다면 뒤따르는 수레 또한 같은 길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리고 책임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지금 우리는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책임을 지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