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짐을 싸는 이유”
"가끔은 물고기보다, 내 마음을 낚기 위해 물가를 찾는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힘들게 왜 낚시를 가느냐.“
나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는 왜 시간과 돈을 들여 물가를 찾는 걸까.
낚시터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처럼, 낚시하는 모습도 참 다양하다. 여럿이 둘러앉아 밤새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놓친 월척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드는 사람도 있다.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신 뒤 계곡이 떠나갈 듯 코를 골며 자다가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낚시하러 왔나, 잠자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먹을거리를 한가득 가져와 아침이면 커다란 쓰레기봉투 하나를 남기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낚시하는 모습도, 살아가는 모습도 사람마다 참 다양하다.
나는 조금 더 다르다.
한두 날이 아니라 여러 날 머물 생각으로 떠나기에 짐이 유난히 많다. 먹을거리는 대부분 냉동해서 가져가고, 잠자리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격이라 두꺼운 매트와 깨끗한 이불까지 챙긴다. 오뉴월에도 밤공기가 차고 바닥이 습하면 스팀보일러를 돌린다. 파라솔과 1인용 낚시텐트, 의자, 간이식탁, 취사도구와 조리도구, 대용량 보조배터리….SUV는 빈틈 하나 없이 가득 찬다.
가로 세로 10m×10m 좌대에 짐을 하나둘 풀어놓으면 금세 내 살림집이 된다. 붕어에게 줄 떡밥만도 라면박스 하나 분량이고, 1.5리터 음료수 여섯 병은 기본이다. 비우러 왔다면서 정작 가져온 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가끔은 혼자 피식 웃는다.
좌대에서는 부탄가스로 밥을 짓고 국이나 찌개를 끓인다. 습기로 눅눅해진 바닥을 말리기 위해 스팀보일러도 부탄가스로 가동한다. 여러 날 머물다 보면 부탄가스 사용량도 적지 않아 화재와 일산화탄소 사고를 늘 염두에 둔다. 자연을 즐기는 만큼 안전은 언제나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낚시도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자리를 좋아한다. 고기가 잘 나오는 명당도 좋지만, 내게는 많은 사람이 손을 탄 자리보다 붕어가 다니는 새로운 회유로를 찾아내는 일이 더 큰 즐거움이다.
비록 조과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여기에도 붕어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성취감은 월척 한 마리를 낚았을 때 못지않다. 그때부터 낚시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 시작했다.
#2. ”욕심은 낚싯대를 늘린다“
예전의 나는 낚싯대를 많이 펼칠수록 조과도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보통 다섯 대에서 여덟 대를 펼쳤고, 욕심이 생기는 날이면 열한 대까지 펴기도 했다. 낚싯대가 많으면 물속의 붕어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욕심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조금만 더.'
'한 대만 더.'
그러다 보면 낚싯대는 하나둘 늘어나고, 마음도 함께 바빠진다.
그런데 사람도 변하나 보다.
작년부터는 수십 대의 낚싯대를 싣고 가면서도 정작 한 대만 펴 놓고 여러 날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허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훨씬 덜 피곤했고, 마음에는 오히려 더 큰 여유가 생겼다.
그 한 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욕심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펴야 안심이 되었다면, 이제는 한 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낚시도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낚싯대를 여러 대 펼치면 더 많은 붕어를 잡을 것 같지만, 막상 낚시를 마칠 무렵이면 한 대만 펴 놓고 끝까지 집중한 사람이 몸도 덜 피곤한 채 더 좋은 조과를 올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이것저것 붙잡기보다 한 우물을 묵묵히 파며 한결같은 정성을 쏟은 사람이 결국 자신의 길을 이루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여러 대의 낚싯대를 펼쳐 놓고도 한 대를 대하듯 같은 집중력과 정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 큰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낚시는 붕어를 많이 잡는 기술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내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좌대 위에서 반복되는 단순한 하루 속에서 조금씩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3. ”좌대 위의 하루“
좌대에서의 하루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압력밥솥에 밥을 짓고 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는다. 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낚싯대 앞으로 간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붕어가 머물도록 하루 여덟 시간 이상 꾸준히 떡밥을 넣어 야 하는 중노동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떡밥을 주고, 찌를 바라본다. 피곤하면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흘러간다.
잠은 두세 시간씩 끊어 자는데 모두 합쳐도 다섯 시간 남짓이다. 이틀, 사흘이 지나면 몸은 서서히 지쳐 간다.
깜빡 졸다가 붕어가 낚싯대를 끌고 가는 소리에 놀라 깨기도 하고, 찌가 천천히 올라오는데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점점 단순해진다.
해야 할 일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떡밥을 주고, 찌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신기하게도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조용해진다. 몸은 점점 피곤해지는데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낚시가 내 마음을 다독여 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하루였지만, 돌아보면 그날 나는 가장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몸은 천천히 지쳐 갔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아지기 시작했다.
#4. ”몸은 지치고 마음은 맑아진다“
며칠이 지나면 몸은 서서히 한계를 느낀다. 잠은 부족하고 허리는 뻐근하며, 눈꺼풀은 자꾸만 무거워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진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얽혀 있던 실타래도 저절로 풀린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 아니 보이면 안 될 것들까지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묘한 순간도 찾아온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붕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게 낚시는 붕어를 잡는 일이 아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복잡했던 생각을 비우며,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다.
몸은 가장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장 맑아지고, 세상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잡념은 가장 적어진다. 어쩌면 이 역설이야말로 낚시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서울의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신호등도,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딘가 생경하다. 그만큼 물가에서의 시간은 내 안의 시계를 천천히 흐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비움은 어느새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5. ”낚시는 욕심을 비우는 일“
누군가는 묻는다.
"고기도 잘 안 잡히는데 왜 그렇게 오래 있느냐.“
어쩌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 낚시는 많이 잡는 일이 목적이 아니다.
붕어가 잡히면 물론 기쁘다. 그러나 많이 잡히면 어망을 정리하고 다시 놓아주는 일조차 번거롭다. 그래서 좌대 주인에게 "왜 고기가 안 나오느냐."며 불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월척 한 마리에도 마음이 들뜨고,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낚시는 붕어를 낚는 기술보다 내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돌이켜 보면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고, 더 높이 오르려 하며, 더 빨리 가려고 서두른다. 하지만 그렇게 채우려 할수록 마음의 여유는 조금씩 사라진다.
물가는 내게 그것을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붕어가 잡히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는 법, 비가 내려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법, 바람이 불어도 자연을 탓하지 않는 법, 그리고 기다림마저 받아들이는 법을.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오면 내 손에는 월척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 남아 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이고, 조금은 비워진 욕심이며,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진 나 자신이다.
어쩌면 낚시는 붕어를 잡는 취미가 아니라, 내 마음을 다듬고 내 욕심을 비워 가는 마음 공부인지도 모르겠다.
#6. ”다시 나를 만나다“
이제는 안다.
내가 물가를 찾는 이유는 붕어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을.
예전에는 낚싯대를 많이 펴는 것이 실력이고, 월척을 많이 낚는 것이 최고 기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낚시는 붕어와 겨루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내 욕심과 겨루는 일이라는 것을.
욕심은 늘 "조금만 더."를 말한다. 낚싯대 한 대를 더 펴고 싶고, 붕어 한 마리를 더 잡고 싶고, 하루만 더 머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물가는 늘 조용히 말해 준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느냐."
돌이켜 보면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지려 했고, 더 높이 오르려 했으며, 더 빨리 가려고 애를 썻다. 그러면서도 정작 가장 소중한 오늘과 내 마음은 쉽게 잃어버렸다.
그런데 낚시는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 조금 덜 가져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한 가지를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물가를 찾을 것이다. 월척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잡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조금씩 비워 내며, 흐트러진 나를 다시 만나고 세우기 위해서.
결국 인생은 얼마나 많이 채우며 살았느냐보다, 무엇을 내려놓았고 무엇을 지켜 냈으며 무엇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붕어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를 만나러 물가로 간다.
- 끝 -